연주가 끝났는데 관객이 박수 대신 숨을 죽였대요. “저 사람, 악마랑 계약한 거 아니야?” 19세기 유럽을 뒤흔든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 이야기예요.
항구 도시의 바이올린 신동
니콜로 파가니니는 1782년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제노바에서 태어났어요. 음악을 좋아한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실력이 너무 빨리 늘어서 어린 나이에 이미 곡을 쓰고 공개 연주회를 열었어요. 십 대에 이탈리아 여러 도시를 돌며 연주할 만큼 일찍 이름을 알렸지요.
사람들이 ‘악마’를 떠올린 이유
파가니니는 키가 크고 몹시 마른 데다 얼굴이 창백했다고 해요. 무엇보다 놀라운 건 손이었어요. 손가락이 길고 관절이 유난히 유연해서, 보통 사람은 닿지 않는 넓은 음정을 한 손으로 짚었다고 전해져요.
오늘날에는 그가 마르판 증후군이나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처럼 관절이 지나치게 유연해지는 유전 질환을 가졌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있어요. 확실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당시 사람들 눈에 믿기 어려운 기교는 ‘악마의 선물’처럼 보였을 거예요.
사라진 몇 년
1800년대 초, 파가니니는 한동안 무대에서 거의 모습을 감췄어요. 감옥에 갇혔다, 귀족 부인과 숨어 지낸다는 온갖 소문이 돌았지요. 다시 나타난 그의 연주는 더 놀라워져 있었고, 소문은 더 커졌어요. 그는 그 시간에 대해 끝까지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고 해요.
소문을 스스로 키운 ‘전설 마케팅’
흥미롭게도 파가니니는 악마 소문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어요. 검은 옷차림, 신비로운 분위기, 그리고 무대 위의 놀라운 연출이 소문을 더 키웠지요. 연주 중 바이올린 줄이 끊어져도 남은 줄로 끝까지 연주했고, 줄 하나(G현)만으로 연주하는 곡을 들려주기도 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자기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 줄 아는 스타였던 셈이에요.
세상을 떠난 뒤에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1840년 5월, 파가니니는 프랑스 니스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마지막 성사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와 평생 따라다닌 소문 때문에 교회는 한동안 그의 장례와 매장을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의 시신은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1876년에야 이탈리아 파르마의 묘지에 묻혔어요. 아들 아킬레가 오랫동안 애쓴 끝이었지요.
그가 남긴 음악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는 지금도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최고의 도전 과제예요. 특히 마지막 24번의 주제는 리스트,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같은 작곡가들이 앞다투어 변주곡을 만들 만큼 사랑받았어요.
궁금해요 Q&A
Q. 정말 악마와 계약했나요?
아니에요! 타고난 몸, 엄청난 연습, 그리고 무대를 연출하는 감각이 만든 전설이에요.
Q. 파가니니 음악은 어디서부터 들어 보면 좋을까요?
「카프리스 24번」부터 들어 보세요. 그다음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들으면 같은 주제가 얼마나 다르게 변하는지 느낄 수 있어요.
영상 핵심 정리
- 1782년 제노바 출생, 어린 나이부터 연주와 작곡을 한 바이올린 신동.
- 놀라운 기교와 외모 때문에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렸고, 유연한 관절은 유전 질환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어요.
- 1840년 세상을 떠난 뒤 매장이 거부되어 1876년에야 파르마에 묻혔어요. 대표작은 24개의 카프리스.
퀴즈
Q. 파가니니가 태어난 이탈리아 도시는?
제노바
Q. 여러 작곡가가 변주곡을 만든 파가니니의 대표곡은?
카프리스 24번 (24개의 카프리스 중 마지막 곡)

